지름길

매력넘치는 아지매들과 부산의 유명한 시장나들이를 다녀보자! 부산의 영원한 랜드마크 영도대교에서부터 시작해 자갈치시장, 부평깡통시장, 국제시장, 책방골목까지!

​걷다보면 지르고 싶은 물건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걷기에 집중해 지갑의 두께를 지키자!

※ ​코스는 현장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될 수 있습니다.

2020 '걷기좋은부산 미션워킹투어'는 '걷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걷기좋은 관광 상품입니다. 미션워킹투어를 더욱 재밌고 원활하게 관람하기 위한 몇 가지의 안내사항이 있습니다.

1. 걷기좋은부산 미션워킹투어는 생활 속 거리두기 수칙을 준수합니다. 마스크를 꼭 착용해주세요.
2. 늦어도 투어 시작시간 5분 후에는 출발할 예정이니 늦지 않도록 유의해주세요.
3. 오랜 시간 걷는 '도보' 투어인만큼 편안한 복장과 운동화 착용을 권장합니다.
4. 물이나 간식, 모자나 양산 그리고 썬크림 등 장시간 걷기에 대비한 물품들을 꼭 챙겨주세요.
5. 명확한 캐릭터를 가진 스토리텔러들이 상황극을 펼치며 투어가 진행됩니다. 열린 마음으로 스토리텔러와 소통 부탁드립니다.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은 부산광역시의 대표적인 어시장이자 대한민국의 대표 어시장이다. 남포동 남항의 바닷가에 있다. 이 항구가 어항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곳에 수산 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인근에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의 자갈치역과 남포역이 있다. 부산 중구의 마스코트도 자갈치 아지매다. 자갈치라는 이름은 생선이름에서 나온 게 아니라 바닥에 자갈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물론 시장 내부를 현대적으로 단장한 지금은 자갈을 찾아볼 수 없다. 치라는 말은 언덕 치(峙)에서 따왔다고 하는 어원도 있고 '자갈이 있는 곳'[處]의 처가 치로 변했다는 어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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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책방골목

1950년 6.25 사변 이후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씨 부부 [구. 보문서점]가 보수동 사거리 입구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

60/70년 대에는 70여점포가 들어서 문화의골목 부산의명소로 자리잡게 되었다. 당시 생활이 어려운 피난민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수많은 학생과 지식인들은 자신이 가져온 귀중한 책을 내다 팔기도 하고 저당 잡히기도 하였으며 다시 자기가 필요한 헌책을 싼값에 되사가서 학업에 충실할수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책을 팔고 사고 교환하려는 책 보따리가 장관 이였으며 때때로 개인이 소장한 값진 고서도 흘러들어와 많은 지식인 수집가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가족을 이별하고 피난온 이산가족들은 만남의장소 이기도 하였으며 많은 청춘남녀 젊은이들의 추억을 만드는 장소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오늘날에 와서는 보수동책방골목 문화축제를 열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이웃과 소통하고 즐기는 대한민국 최다의 서점이 밀집된 중구의 자랑거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으며 불우이웃돕기 등 행사를 거져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부평깡통시장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에 있는 재래시장. 1890년대 '사거리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부산 중구 부평동에 자리잡았는데, 1910년 전국 최초 공설 1호 시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통조림 등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캔 제품들을 주로 이곳에서 갖다팔기 시작하면서 '깡통시장'이란 명칭이 생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는지 '도깨비시장'이라는 별칭도 있었다고. 1970~80년대에는 워크맨 등 일본제품들을 많이 팔았으며, 이러한 물품들을 유통하려고 전국 각지에서 많은 유통업자들이 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1일 유동인구만 약 2만 명에 달하며, 이는 '단일 시장'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한다. 특히 야시장이 유명하며, 대만의 스린 야시장을 벤치마킹하여 2013년 도입했다. 흥행에 성공했고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야시장 마케팅이 부평깡통야시장에서 시작되었다.

40계단

40계단(四十階段)은 부산 중구에 위치한 문화명소이다. 한국 전쟁 당시 이 인근에 거주하던 피난민, 부두 노동자들의 애환을 기리기 위해 국민은행 중앙동지점부터 40계단까지의 거리를 '40계단문화관광테마거리'로 조성되었다. 영화인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오프닝신에 등장하여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1950년 6·25 피난시절 교통·행정의 중심지였던 부산중구에 위치하여 많은 피난민들이 그 주위에 판잣 집을 짓고 밀집해서 살았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로 앞 부두에서 들어오는 구호물자를 내다 파는 장터로 이용되었고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자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기도 하다. 1951년 박재홍이 부른 “경상도아가씨” 라는 곡의 소재로도 사용되는 등 당시 영주동 뒷산, 동광동, 보수동 일대에 흩어져 살았던 10만이 넘는 피난민들에게는 40계단은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한국 전쟁 시 피난민의 애환과 향수가 담겨있는 유서 깊은 40계단 주변을 현재 50-60년대 분위기에 맞게 재현해 추억을 회상할 수 있다. 

국제시장

국제시장(國際市場)은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1~4가 위치한 부산의 대표적인 전통재래시장이다.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들이 남긴 물건과 해외동포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거래하기 위해 현재의 자리를 장터로 삼으며 국제시장의 역사는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던 이 공터는 처음엔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다가 1948년에 건물을 세우고 자유시장으로, 1950년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까지 취급하게 되면서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게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해외양품, 미군부대 군수물자, 수입 밀수품, 전자제품 등 여러 가지 상품판매로 호황을 누렸고 5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를 겪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국제시장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자리를 지키며 새롭게 거듭났다. 태어난 순간부터 한 생을 살아가는 동안의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었다던 곳. 어느덧 70여년, 오늘날 먹자골목과 아리랑거리, 젊음의 거리, 구제골목과 함께 부산의 관광 상품으로 자리한 이곳은 한국 근현대사의 숱한 사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부산의 국제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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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공원

부산항이나 영도를 바라볼 수 있고 또 부산타워의 아래에는 이순신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용두산이란 지명은 용 용(龍) 자에 머리 두(頭)자를 써서 '용의 머리 형상을 한 산'이란 뜻이다. 원래는 용두산보다 조금 작은 동산인 용미산(용의 꼬리)도 있어서 풍수지리적으로 대칭하여 한 마리 용의 형상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1936년 일제가 부산부청을 만들면서 착평하여 사라졌다. 이후 부산시청으로 쓰였으며, 지금은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들어섰다. 용두산은 조선시대에 초량소산(草梁小山), 송현산(松峴山)으로 일컬어졌고, 1876년 부산항 개항 후에는 소산(小山 ), 중산(中山) 등으로 불렸다. 용두산이란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78년 일본 자료인 조선귀호여록(朝鮮歸好餘錄)에서다.

용두산은 조선시대 초량왜관의 중심에 있는 산으로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소나무가 많아 송현산으로도 불렀다. 개항과 함께 일제 강점기인 1915년 11월부터 1916년 6월 사이에 공원이 만들어졌으며, 산위의 정상은 2단으로 구분되었다. 조선시대 왜관 시절부터 일본인 거류자들이 만든 여러 신사가 세워져 있었다. 특히 정상에는 부산을 대표하는 신사인 용두산신사가 만들어져 있었으며, 1932년에는 용두산 신사 오른쪽에 옛 부산시청 자리에 있던 용미산신사까지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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